게시판 뷰
게시판 뷰페이지
2023년 10월 : 미사일록(美槎日錄) : 주미공사의 외교일기
분류 2023년
작성자 학예연구실 염창석
날짜 2023.10.04 (최종수정 : 2023.11.02)
조회수 270
썸네일 /128920.jpg

 

이범진(李範晉, 1852~1911) , 이건호 수기(手記)

필사본(筆寫本), 1(59), 포배장(包背裝)

가로 23.0cm, 세로 28.5cm


 1911126(러시아력 113) 정오 무렵,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교외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초대 주러공사로 러시아에서 국권회복운동을 주도했던 이범진은 1910년 한일합방을 소식을 들은 후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 땅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범진


이범진과 이기종(우), 김규식(좌)


 그는 고종에게 우리나라 대한제국은 망했습니다. 국권을 회복할 방책이 없다면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자결 외에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탄식하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된 후에도 이범진은 일본의 송환요구를 거부하며 러시아에서 계속 항일운동을 펼쳐나갔습니다. 고종의 헤이그 밀사 파견 때에는 이준, 이상설과 함께 고종의 친서를 작성하고 아들인 이위종을 통역 및 일원으로 참여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러시아에서의 활동상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는 반면 이범진이 9대 주미공사로서 미국에서 행한 외교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이범진의 주미공사 시절 활동을 기록한 일기가 바로 우리 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미사일록’입니.


미사일록 표지


 󰡔미사일록󰡕이범진이 고종에게 주차미국특명전권공사(駐箚美國特命全權公使)로 임명된 1896(고종 33) 620일부터 이듬해인 1897(고종 34) 131일까지의 기록입니다. 이범진은 주미공사로 임명된 후 인천을 출발해 미국 워싱턴에 도착하기까지의 구체적인 여정과 미국에서 외교관으로서 5차례 걸쳐 미 대통령을 접견하고 미국의 우정장관과 탁지대신을 만나는 등 미국 정치인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인 내용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주미공사관 외관(1893)

 

 󰡔미사일록󰡕에는 이범진이 워싱턴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남녀가 부둥켜안고 춤추는 장면을 보고 놀라는 모습, 미국의 발달한 선진문명에 감탄하는 모습, 다른 나라 공사관의 초대를 받고 초대를 받으면 답례로 초대를 하는 것이 관례인데 조국의 가난한 경제 사정으로 초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을 한탄하는 모습 등이 기록되어 있어서 약소국 외교관으로 느꼈던 문화적 충격과 비애를 생생하게 전달해 줍니다.

 후반부 실려 있는 부록에는 1897121일 미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연회 때의 좌석 배치도가 첨부되어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배치도에는 우측 하단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미대통령, 미대통령 부인, 미국무장관. 각국대사 등 착석자의 이름을 기록하여 이날 참석했던 66인의 명단과 좌석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사일록 부록 연회배치도(32, 33면)


 또한 단어와 일상 대화를 영어, 한자, 한글 순으로 표기해 놓았는데 예를 들면 와츠 時票 쳬인 時票絲 토박고 담배, 유어 처럼 영어 발음을 먼저 적고 이에 해당하는 한자나 우리말을 병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타쉬 attache 書記生, 식글트리 secretary 參事官, 민의시터 minister 公使 등 업무와 관련한 단어도 기록하였습니다. 단어 외에 간단한 영어 회화도 있어서 일종의 영어 연습장이었던 걸로 추측됩니다.


미사일록 부록(38, 39면)


 이범진은 미국 역대 대통령선거사상 가장 치열했던 1896년 선거를 직접 경험하고 당시의 정치 쟁점에 대해 기록하였으며 미국의 의회제도와 다수결 원칙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여 당시 조선 외교가의 미국인식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미사일록󰡕은 수침으로 인한 번짐과 말림, 구겨짐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의 2022년 맞춤형 복원·복제 지원서비스 사업에 선정되어 1여 년의 복원작업으로 보존상태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복원 전


복원 후

사진 국가기록원 제공


 박물관에서는 󰡔미사일록󰡕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신청 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문화재청은 󰡔미사일록󰡕이 주미공사의 외교상황, 당시 영어 사용 용례 및 표기, 19세기 말 지식인으로서 서양 국가에 대한 인식수준 등 다양한 역사적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임을 인정하여 지난 810일 󰡔미사일록󰡕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예고하였습니다.


미사일록의 등록문화재지정예고 보도 (2023.8.10.연합뉴스)


< 참고문헌 >

김문식󰡔민문고 東裝貴重本 해제집󰡕, 문예원, 2012.

김철웅󰡔미사일록󰡕, 푸른역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