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개포동 석조관음보살좌상(전) 高靈 開浦洞 石造觀音菩薩坐像(前)

  • 소 장 구 분
    탁본
  • 시 대
    고려 성종 4년(985)
  • 크 기(cm)
    가로: 114 세로: 204
  • 기 증 자
    단국

고령 옹희2년명 관음보살상 불상은 개포동(開浦洞) 안쪽 산기슭에 30cm 두께의 얇은 판석에 조각하였는데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어서 전체적으로 얇게 양각하였다.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데 단엽의 앙련으로 연판 끝이 예리하며 중심에 정면을 향한 중판을 두고 그 좌·우로는 모두 비스듬하게 조각하였다. 머리에는 3엽의 보관을 쓰고 그 중앙에 화불 1구가 조각되어 잇는 것으로 보아 존명이 관세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보관 밑에는 머리 양쪽에 관대(冠帶)가 있어 수식(垂飾)과 보발이 흘러내리고 있다. 상호는 이마가 넓고 양쪽 볼이 약간 좁아들었으며 양쪽 눈썹과 콧등만이 뚜렷하나 눈과 입술은 분명하지 않으며 백호공(白扈孔)이 큼직하게 남아 있다. 양쪽 귀는 짧으나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없다. 양쪽 어깨에 걸친 천의는 선각으로 처리하였으나 유려하게 흘러 양쪽 무릎을 덮고 있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어 외장하였으며 손목에는 장식이 완연하다. 왼손으로는 연줄기 하나를 잡고 있는데, 그 줄기는 두광에까지 올라가 연꽃을 피우고 있다. 광배는 판석 윤곽에 가득 차도록 선문으로 양각하였는데 3조의 선으로 원형의 두광을 이루고 있다. 또 3조의 원광 밖에는 화염문을 조각하고 그 밖으로 또 하나의 원광을 음각하였다. 신광은 양쪽 어깨부분으로부터 2조선을 양각하여 표시하였으며 그 밖으로는 화염문을 장식하였다. 이 보살상은 전체적으로 보아 단조로운 선각으로 양각의 표현이 강하지 못하여 평판적이다. 판석이라는 재료에서 오는 제약 때문에 초기의 거창한 기상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산형(三山形)의 보관과 상호, 큼직한 백호공은 연화좌와 아울러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