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원공 원호신도비(전) 忠壯元公 元豪神道碑(前)

  • 소 장 구 분
    탁본
  • 시 대
    조선 영조 44년(1768)
  • 크 기(cm)
    가로: 104 세로: 234
  • 기 증 자
    단국

경기도 여주 북내면 장암리 원씨 마을에 원두표 신도비와 함께 세워져 있는 조선 중기의 무신 원호장군(1533~1592)의 신도비이다. 원호의 본관은 원주이며 여주에서 출생하였고 자는 중영(仲英)이다. 1567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선전관에 이어 내외직을 두루 거치고 경원부사로 있을 떄에 이탕개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1587년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재직 중 전라좌도에 침입한 왜구를 막지 못하여 인책, 유배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원도 조방장으로서 패잔병과 의병을 규합하여 여주 신륵사에서 적병을 크게 물리쳤다. 그 공으로 강원방어사겸 여주목사로 임명되었으나 얼마 뒤 적의 복병을 맞아 전사하였다. 시호는 충장공이다. 비문에는 이러한 원호의 생애와 활동이 기록되어 잇다. 최규서(崔奎瑞)가 비문의 글을 지었으며, 7대손인 원인손(元仁孫)이 글씨를 썼고, 김시묵(金時黙)이 전액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