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 탑비명(전) 寧越 興寧寺址 澄曉大師 塔碑銘(前)

  • 소 장 구 분
    탁본
  • 시 대
    고려 혜종 원년(944)
  • 크 기(cm)
    가로: 124 세로: 288
  • 기 증 자
    단국

신라 말의 선사인 징효대사(澄曉大師) 절중(折中)의 업적을 기리는 비이다.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였던 흥녕사터에 남아 있으며 높이는 277.3cm, 폭 113.6cm이다. 비문은 총 36행에 1행 81자이며 글자크기는 2~3.5cm이다. 징효대사는 일곱살 때 오관산(五冠山)으로 출가한 후 도윤(道允)과 자인(慈仁) 등의 선사를 찾아가 화엄을 수학하고 선지식을 찾아 수행하였다. 헌강왕과 정강왕의 우대를 받았으며 진성여왕이 국사의 예를 표하였으나 사양하였다. 비문에는 대사의 행적과 대사입적 후 다비(茶毘)하여 사리 천과(千稞)를 얻었다는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다. 흥녕선원을 중사성에 예속시킨다거나 명주승정을 파견하여 일을 처리하는 등의 중요한 사료도 들어있다. 대사가 효공왕 5년(901) 75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대사를 존경하던 효공왕은 징효대사라 칭하고, 탑명을 보인지탑(寶印之塔)이라 추증하였다. 박인범에게 비문을 짓도록 하였으나 마치지 못하여 924년에야 비문을 지었다. 비의 건립은 대사가 입적한 44년 후인 944년(혜종 원년)에야 이루어졌다. 고려 초의 문인 최언위(崔彦撝)가 짓고 최윤(崔潤)이 해서로 비문과 전액(篆額)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