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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뼈대 된 친필 초고본 「연행음청」 공개
작성자 학예연구실 기수연
날짜 2023.09.18 (최종수정 : 2023.09.20)
조회수 708

관련기사 링크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519633?sid=102



단국대, 8일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학술대회 열어
‘열하일기’ 수록 안 된 43일간 일정 ‘연행음청(곤)’ 공개
‘열하일기’ 초고본 계열 이본(異本) 연구 결과도 발표

연행음청(곤) 표지. 단국대 제공


단국대(총장 안순철)가 조선 후기 실학자 겸 소설가인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에 수록되지 않은 43일간의 청나라 연행 일정이 기록된 ‘연행음청(곤)(燕行陰晴 坤)’을 8일 공개했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은 이날 용인 죽전캠퍼스 국제관 101호에서 학술대회를 열고, 연암 박지원의 친필 초고본인 ‘연행음청(곤)(燕行陰晴)(坤)’을 비롯해 ‘열하일기’ 초고본 계열의 이본(異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행음청(곤). 단국대 제공
‘연행음청(곤)’은 박지원이 연행서 돌아와 정리한 초기 연행록이 포함된 친필 본이다. 현전하는 ‘ 열하일기’ 최초의 모습으로, ‘열하일기’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기존 학계에서 ‘열하일기’에 대한 다양한 이본(異本) 연구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연행 원자료가 나타난 적은 없었다.

‘연행음청(곤)’은 연행 일정을 중심으로 표지를 포함해 22장으로 구성됐다. 표지는‘연암산방(燕巖山房)’이라고 인쇄된 연암의 개인 원고지를 사용했다. 주요 내용은 △제2장~제5장 ‘빈경(貧經)’ △제6장 ‘연행노정(燕行路程)’ △제7장 ‘열하궁전기(熱河宮殿記)’ △제8장 ‘연행 일기’로 구성돼 있다.

연행음청(곤). 단국대 제공

‘연행음청(곤)’에는 1780년 5월 10일부터 7월 30일까지 79일간의 주요 연행 일정, 날씨, 숙박 정보 등이 기록돼 있다. 이 가운데 5월 10일부터 6월 23일까지 43일간의 기록은 기존의 ‘열하일기’(1780.6.24.~8.20.)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내용이다. 기존 ‘열하일기’에는 연행을 위해 연암이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 연행을 떠나기까지 과정이나 국내에서의 여정 등을 제대로 알 수 없었는데, ‘연행음청(곤)’을 통해 이 부분을 보완할 수 있게 됐다.

‘연행음청’은 일종의 ‘일기’로, 연행 일정 중심으로 아주 간략히 서술돼있다. ‘열하일기’의 뼈대라고 할 수 있다. ‘연행음청’을 토대로 연암은 연행 가는 사람들이 밤비에 젖은 옷을 말리는 이야기, 마두(馬頭)가 술을 사와 함께 마시는 이야기, 낚시한 이야기 등을 현장감 있게 묘사하여 열하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연행음청(곤)’ 가운데 ‘빈경(貧經)’과 ‘열하궁전기(熱河宮殿記)’는 기존에 확인할 수 없었던 박지원의 새로운 문집이다. 박지원이 연행 중 쓴 시 4수도 함께 실려있다. ‘빈경(貧經)’은 가난을 주제로 자신의 곤궁한 삶을 투영한 이야기를 담았고, ‘열하궁전기(熱河宮殿記)’는 연행 중 열하궁전을 보고 느낀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을 풍자했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단국대 제공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은 “연암의 ‘열하일기’는 ‘우언(풍자)과 외전(사건)을 서술해 이용후생(利用厚生)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 평한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1748~1807)의 언급을 학술적으로 확인하는 계기”라고 ‘연행음청(곤)’의 가치를 평가했다.

이종수 석주선기념박물관장은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 뼈대이며 최초의 모습인 ‘연행음청(곤)’을 학계에 개방해, 연암의 문예성이나 실학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단국대 정재철 교수의 ‘열하일기 초고본 계열의 이본 연구’를 시작으로, △연암 ‘연행음청기’의 의미와 가치(박철상/한국문헌문화연구소) △연암집 교감과 여러 이본의 평어에 대한 고찰 분석(김윤조 외/계명대) △필사본 ‘과농소초’의 편찬 과정(김문식/단국대) △실학박물관 소장 연암 박지원 필사본 저작류의 개황과 가치(권진옥/단국대) 등 5개의 주제가 발표됐다. 주제발표 이후에는 좌장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를 중심으로 논평과 토론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