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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 국가민속문화재 제2호 심동신(沈東臣)의 금관
분류 2023년
작성자 학예연구실 염창석
날짜 2023.03.02 (최종수정 : 2023.11.02)
조회수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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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유물은 조선 말기 문신인 심동신(沈東臣, 1824~ ?)이 착용했던 금관(金冠)으로 196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어느덧 지정 60주년이 되었습니다.




심동신(沈東臣)의 금관




 심동신은 순조 24(1824)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사경(士敬)입니다. 철종 원년(1850) 증광시(增廣試) 을과(乙科)에 급제하였으며 황해도 관찰사, 의금부사, 사헌부대사헌 등을 지냈습니다. 이 유물은 심동신이 참판으로 있을 때 착용했던 것으로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어 오다가 19487대손인 최우씨로부터 조복(朝服)과 함께 故 석주선박사에게 전해진 후 우리 박물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이하응 초상-금관조복본

(보물 제1499, 출처:문화재청)




 금관(金冠)은 문무백관이 조복(朝服)이나 제복(祭服차림을 할 때 함께 착용했던 관모로 금량관(金粱冠또는 양관(梁冠)이라고도 합니다조복은 조선시대 관료들이 나라에 큰 행사나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낼 때나 설날[元旦]과 동지(冬至등에 착용한 예복입니다금관과 함께 착용하므로 금관조복(金冠朝服)’이라고도 합니다.




심동신의 조복(국가민속문화재 제2)


심동신이 조복과 함께 들었던 홀()




 조선시대 금관은 계급에 따라 관 상부의 금색선인 양()의 수량이 구분되었습니다. 1416(태종 16)에 문무백관의 조복제도를 정한 이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양관은 조복과 제복에 공통으로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1품은 5량관, 2품은 4량관, 3품은 3량관, 4·5·6품은 2량관, 7·8·9품은 1량관을 썼고, 왕세자는 강사포에 6량관을 쓰도록 정하였습니다. 이것은 명()에 대한 이등체강(二等遞降)의 원칙을 따른 것이었으나, 대한제국 시기 대한예전(大韓禮典)에는 칠양관제를 명과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했습니다.


 금관은 관 전면의 머리둘레 부분인 관무(冠武, 관의 앞쪽 이마에 닿는 부분)와 다음 두 개의 산봉우리 모양인 뒷면 장식판, 마지막으로 관 앞의 중심에서 정수리를 덮어 뒷면 장식판에 연결된 굽은 양주(梁柱)로 구성됩니다. 여기에 관의 뒷부분을 관통하는 나무비녀()와 관을 머리에 고정시키는 영()이 함께 구성되어있습니다. 뒷부분 양옆에는 관무의 양 끝을 끼울 수 있는 고리가 달려있어 크기를 조정하고 고정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금관의 구조




 심동신의 양관은 종선이 5개인 오량관(五梁冠)으로 높이는 19.7이며 목잠(木簪)과 옥색의 술달린 끈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관무와 배면은 문양을 투조하여 새긴 후 금칠하고 양주는 죽사(竹絲)로 모양을 잡고 흑색 비단을 씌워 만들었습니다. 이때 사용된 흑색 비단은 신축이 우수한 추사(縐紗)가 사용되었습니다.


 현전하는 유물은 5량관이 대부분이며정인학(鄭仁學, 1839~1919)의 육량관이 우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정인학(鄭仁學, 1839~1919)의 육량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