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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 석호상(石虎像)
분류 2022년
작성자 학예연구실 염창석
날짜 2022.10.31 (최종수정 : 2023.11.02)
조회수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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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한남동캠퍼스)앞 석호상 모습




 호랑이는 일찍부터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에서 서쪽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중요하게 인식하였으며, 무덤을 보호하는 12지신의 하나로 봉분 호석(護石)에 새기거나 별도로 조각하여 배치하였다.

 우리나라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1330~1374)과 노국공주의 현정릉(正陵)에 이르러 석호가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석호는 왕릉의 상계(上階, 또는 초계)에 해당하는 봉분 좌우에 놓이는데, 석양(石羊), 석마(石馬)와 함께 한 쌍 혹은 두 쌍이 배치되어 석수(石獸)로서 왕릉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석호상의 조각의 문헌 규정과 배치를 규정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1474) 흉례(凶禮)치장(治葬) 조에는 석호(石虎), 4개를 설치하되 북에 2, 서에 각각 1개를 설치하는데, 모두 밖을 향하게 한다.”고 하였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죽전캠퍼스)앞을 지키고 있는 석호상




 석주선기념박물관 석호는 조선 제11대 중종(中宗, 1488~1544)의 계비였던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1491~1515)의 초장지인 옛 희릉(禧陵)에 배치되었던 의물(儀物)로 전해진다. 희릉은 1515(중종 10)에 장경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태종의 헌릉(獻陵)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한 능이었으나, 1537(중종 32)에 경기도 고양시로 천장(遷葬)하게 되면서 무덤의 의물이었던 석호상이 묻히게(埋安)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측 석호상의 얼굴




 1970년대에 도굴되었으나 다행히 회수되었으며, 2014년 보존처리가 실시되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는 국립중앙박물관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특별전에 한국 석호상의 우수성을 알리는 대표 유물로서 출품되었다.




좌측 석호상 정면, 우측 석호상 후측면




 전체적으로 유려한 곡선으로 표현하면서도 입체감 있게 조각하여 정중동(靜中動)의 느낌이 강한데, 다소 해학적인 얼굴 묘사에도 불구하고 결코 가볍지 않은 위엄을 보여주고 있는 조선 전반기의 대표적인 호랑이 조각상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