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관(花冠)은 꽃·보석 등을 장식하여 아름답게 만든 쓰개로, 조선시대 왕실 여인들이 예복과 함께 착용하던 의례용 관모 중 하나입니다. 혹은 궁중 잔치에서 정재여령(呈才女伶)이 춤을 출 때 착용했던 관모입니다.
화관은 ‘꽃 화(花)’와 ‘갓 관(冠)’이라는 이름처럼, 머리에 꽃을 꽂아 장식했던 삽화(揷花)의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꽃으로 장식한 화관은 고대 중국과 동유럽에서도 유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점차 금방 시드는 생화를 대신해서 종이나 비단 등으로 만든 조화(造花)가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 화관의 기원에 대한 근거는 많지 않으나 송대(宋代)의 화관이나 삽화의 유행이 고려시대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화관(花冠)
조선시대 여성의 화관은 주로 경사나 혼례 시에 예복과 함께 착용되었습니다. 이는 조선 영·정조대에 가체 대용으로 족두리와 함께 화관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확산되었습니다. 『병와집甁窩集』에서 화관은 혼인한 여성[昏女]의 머리장식[頭飾]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조선 말기의 왕실(王室)에서는 주로 소례복인 당의(唐衣)에 착용하였고 민간에서는 혼례시 착용토록 허용되었습니다. 기본형태는 유사하나 장식품의 재질과 장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대란치마와 당의를 착용한 모습의 덕혜옹주
(출처 : 황족화보皇族畵報》 제220호, 국립고궁박물관)
화관은 꽃 모양으로 장식하거나 각종 보석을 올려서 화려하게 장식하여 만듭니다. 예복용 화관은 양옆이 개방된 구조로 대부분 여러 겹의 종이를 배접하여 만든 사각이나 육각, 혹은 팔각의 기본 틀을 검은색, 홍색 등의 비단으로 감싸고 그 위에 옥판, 석웅황, 밀화, 비취, 진주 등의 각종 보석을 올려 장식하였습니다. 특히 앞 중심에는 금전지로 싼 술 장식을 늘어뜨리거나 진주로 된 드림을 달아 장식하기도 합니다. 상판에는 옥, 석웅황, 유리구슬 등과 함께 떨철을 달아 움직임에 따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장식했습니다. 평양 지방의 신부 혼례복에서는 색색의 조화를 꽂아서 장식한 화려한 모양의 화관을 사용하였습니다. 머리 위로 높게 솟은 구조와 좌우로 퍼진 형태는 권위와 존엄,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장식 요소 하나하나에는 부귀·다산·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원삼과 화관을 착용한 신부 -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 전시 포스터
(출처:국립민속박물관)
이러한 예장용으로써의 화관 뿐 아니라 조선 말기까지 궁중정재(宮中呈才)할 때 여령(女伶)·동기(童妓)·무동(舞童)의 머리 장식품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세종실록世宗實錄』에서 남악(男樂) 정재(呈才) 관복 중에 부용관(芙蓉冠)의 기록이 있고, 『악학궤범樂學軌範』 무동관복도설에도 부용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용관의 ‘부용(芙蓉)’은 연꽃을 의미하는 한자로 따라서 부용관은 화관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장식의 예복용 화관과 달리 궁중정재에서 동기(童伎)용 화관은 비슷한 구조를 가지나 화려한 보석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부용관(본 박물관 소장품)
오늘날 화관은 한국 전통의상 속의 미적 절정을 보여주는 유물로, 그 속에 담긴 기술, 상징, 예법은 한국 전통문화의 깊이를 말해줍니다. 고운 꽃이 머리에 피어난 듯한 화관은,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여성의 품위와 경사스러운 순간을 기리는 문화적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왕실의 예복과 장신구』, 국립고궁박물관, 2015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의생활)』, 국립민속박물관, 2017
국악사전, 국립국악원, https://www.gugak.go.kr/ency/topic/view/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