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범 묘비(전,후,측) 徐光範 墓碑(前,後,側)

  • 소 장 구 분
    탁본
  • 시 대
    근대 대한 광무 4년(1900)
  • 크 기(cm)
    가로: 170 세로: 186
  • 기 증 자
    단국

대한 주미공사와 법부대신을 지낸 서광범 선생의 묘비이다. 서광범(1859~1897)의 자는 서구(敍九), 호는 위산(緯山)이며 본관은 대구이다. 비문에 의하면 1859년(철종 10)에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풍채와 기품이 비범하였고 재예에 뛰어났다. 1880년(고종 19) 박영효(朴泳孝)가 일본에 건너갈 때 수행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했으나 개혁이 사흘 만에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후 제2차 김홍집(金弘集) 내각의 법부대신(法部大臣)이 되었다가 주미공사(駐美公使)로 부임한 후 임지에서 죽었다. 주미공사 총영사였던 안연(安連)이 비문의 글을 짓고, 사촌동생인 서광식(徐光軾)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