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S

게시판 상세 내용을 볼 수 있는 페이지
2026년 8월 : 나막신
category 분류 2026년
person_book 작성자 학예연구실
date_range 날짜 2026.08.11
visibility 조회수 222

 

 

우리나라의 전통 신발은 형태와 재료, 용도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형태에 따라서는 신목이 길어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화(靴)와 신목이 짧은 혜(鞋)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나무를 깎고 안쪽을 파내어 만든 신을 극(屐) 또는 목극(木屐)이라 하며, 일반적으로 나막신이라 부른다. 최세진(崔世珍)의 『사성통해(四聲通解)』에서는 목극을 ‘나모 격지’라고 풀이하고 있어, 당시 나무로 만든 신을 ‘격지’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나막신’의 옛말은 ‘나모신’으로, 15세기 문헌에서부터 확인된다. ‘나모신’은 ‘나무’를 뜻하는 ‘나모’와 ‘신’이 결합한 말로, 19세기에는 ‘나무신’, ‘나막신’, ‘나목신’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나막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사용되고 있다.

나막신은 주로 비 오는 날에 신었으나 맑은 날에도 착용하였으며, 남녀노소와 신분에 관계 없이 널리 사용되었다. 다만 착용에는 일정한 예법이 있었는데, 조선 후기 백과사전서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나막신을 신고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을 오만한 행동으로 여겨 천인이나 젊은이는 양반이나 어른 앞에서 감히 신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난한 선비들이 마른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다녔는데, 걸을 때마다 굽에서 ‘딸각딸각’ 소리가 난다고 하여 이들을 ‘남산골 딸각발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나막신은 나무를 파서 신과 굽을 통째로 만들었는데, 사용된 재료는 소나무·배나무·참죽나무·은행나무·오동나무 등 다양한 목재가 사용되었다. 특히 오동나무는 가벼워 널리 선호되었으며, 참죽나무나 은행나무로 만든 나막신에는 옻칠이나 조각, 채색 등을 더하기도 하였다. 나막신의 형태는 신코가 날렵하게 올라가 신울로 이어지는 당코형과 코가 비교적 둔한 발막형으로 나눌 수 있다. 굽이 있는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돌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굽이 낮거나 거의 없는 평격지가 널리 사용되었다. 장식이 없는 소박한 나막신뿐 아니라 신코와 신울에 태사무늬를 새기고 검은색을 칠한 것, 불에 달군 인두로 가는 선무늬를 넣은 것도 있다. 특히 색을 칠해 꾸민 나막신은 ‘채극(采屐)’이라 하였으며, 어린아이용 나막신에 화려한 채색을 한 것이다.

조선 후기 생활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섬용지(贍用志)」에는 나막신 관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나막신은 신은 뒤 물로 씻지 않고 젖은 천으로 닦은 후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야 하며, 햇볕에 직접 말리면 표면이 터져 갈라질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목재의 특성을 고려한 당시의 생활 지혜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1800년대 / 길이 26㎝ / 참죽나무

 

 

전형적인 남성용 혜를 본떠 만든 형태로, 신코가 짧고 좁으며 완만한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참죽나무로 제작되었으며, 나뭇결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크기로 보아 다른 신발 위에 덧신는 용도로 착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1800년대 / 길이 29.5㎝ / 소나무

 

 

소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으로, 신코와 뒤축이 위로 높게 올라가 전체적으로 유려한 곡선을 이룬다. 표면은 붉은색을 띠며, 신코에는 여러 줄의 선을 음각하여 장식하였다. 굽이 높으며 길이가 비교적 긴 편이어서 덧신는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1800년대 / 길이 28㎝ /소나무

 

 

운혜(雲鞋)의 형태를 본뜬 여성용 나막신(위)으로, 소나무로 만들었다. 신코는 완만하게 위로 올라가며, 신코와 신울에는 운혜에서 볼 수 있는 죽엽문을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굽 안쪽에 ‘저하’라는 글씨가 적혀 있어 왕실 여성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800년대 / 길이 28.5㎝ / 배나무

 

 

굽이 없는 형태의 나막신으로, 배나무를 깎고 내부를 파내어 만들었다. 신코는 위로 높게 솟아 있고 앞부분은 둥글게 처리하였으며, 신울은 낮고 뒤축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높아진다. 별도의 채색이나 장식 없이 나뭇결과 가공 흔적을 그대로 살린 형태이다.

 

 

1890년대 / 길이: 28㎝ / 오동나무

 

 

태사혜(太史鞋)의 형태와 장식을 본떠 만든 남성용 나막신이다. 오동나무를 깎아 만들고 표면에 붉은색을 칠하였다. 신코와 뒤축에는 당초문을 음각하고, 신울 가장자리와 도리 등을 입체적으로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태사혜-조선시대 사대부가나 양반계급의 남성들이 평상시에 신던 신발로 코와 뒤축에 태사문을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앞의 나막신은 이러한 태사혜의 형태와 장식적 특징을 목재에 표현하였다.

 

 

나막신의 제작과 판매 모습은 조선 말기와 근대의 그림과 사진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목혜장이」에는 두 명의 장인이 나무를 다듬고 안쪽을 파내어 나막신을 만드는 모습과 함께 제작 도구와 여러 단계의 나막신이 그려져 있다. 또한 『Burton Holmes Travel Stories』에 수록된 나막신 가게 사진에서는 여러 형태의 나막신이 가게 앞에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당시 나막신이 일상적으로 제작·판매되었던 생활용품이었음을 보여준다.

나막신은 비나 눈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인 신발이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을 살펴보면 재료와 형태, 장식이 매우 다양하다.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것에서부터 운혜나 태사혜의 형태를 본뜨고 조각과 채색을 더한 것까지, 나막신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미적감각, 목공예기술이 함께 담겨 있다.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거의 사라진 신발이지만, 나막신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나막신 가게
서울역사아카이브, 『Burton Holmes Travel Stories』
(WHEELER PUBLISHING COMPANY, 1925)

 

 


김준근, 「목혜장이」, 『기산 김준근 풍속화』(스미소니언 역사 박물관 소장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이미지 컬렉션
https://contents.history.go.kr/collection/level.do?levelId=mp_009_0010.

 

 

 

참고문헌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의식주 생활 사전-의생활 2』, 국립민속박물관, 2017.

국립국어원, 「나막신」, 『우리말샘』.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의식주 생활 사전: 의생활 2』, 국립민속박물관, 202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전통 신의 모양새와 짜임새』, 단국대학교출판부, 202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화(靴)·혜(鞋)·이(履)』, 단국대학교출판부, 2004.

서유구(徐有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섬용지(贍用志)」.

이여성(李如星), 『조선복식고(朝鮮服飾考)』.

한국학중앙연구원, 「나막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이미지 컬렉션

arrow_drop_up 다음글 2026년 9월 : 고이댕기
arrow_drop_down 이전글 2026년 7월 : 고구려 연화문 와당(高句麗 蓮花文 瓦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