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주선기념박물관의 연꽃
(석주선 박사가 애지중지 가꾸던 수련은 지금도 박물관 한 켠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연화문은 이집트,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인도 등 고대 문명권을 중심으로 신화적 종교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로터스 장식법에서는 태양숭배와 관련이 있으며, 서기전 3,000년전 고대 이집트의 제4왕조 카프레(Knafre, 서기전 2900∼2750)의 조각상 왕좌에 연화가 새겨져 있음이 확인된다. 인도에서는 서기전 1500년경 이전에 이미 백련화(白蓮花)가 선주민 사이에 신격화되었으며, ≪리그 베다 Rig Veda≫에서는 인간의 심장과 8엽의 연화를 비유하고 있다. 이와같이 고대 이집트와 인도에서 연꽃은 물, 태양, 재생을 상징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중국 한나라의 화상석(畫像石)에 새겨진 일월상도에 표현된 8엽의 연화나, 중국·한국·일본의 와당 등이 연화로 장식된 것은 고대 인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특히 불교에서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상징하는 연꽃은 다양한 형태로 조형되었다.

조선시대 연화문 문살, 양산 통도사
즉,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연꽃 속에서의 화생(化生)을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는 극락정토가 연꽃으로 이루어진 부처의 세계를 의미한다. 또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사방이 평평하고 깨끗하며 견고하여 금강륜산(金剛輪山)이 둘러싸인 곳을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연화문이 등장하는 시기는 고구려 고분 벽화를 비롯하여 고구려 와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재 박사가 기증한 연화문 와당은 청암리토성이나 정릉사지 등 평양 지역에서 출토되는 고구려 국내성 시기 연화문 와당의 변형으로 고구려 왕실에 의해 불교가 적극적으로 장려되었던 고국양왕대인 5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평양성에서 출토된 연화문 와당과 동일한 유형으로 판단된다.

각종 연화문와당 (신라~고려)
고구려 와당은 연화문의 판단(瓣端)이 뾰족하여 날카롭고 강한 인상을 주고 있어 대체로 완만하고 장식적인 백제나 신라의 연화문과 차이를 보인다. 연화문 와당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장식기와로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중재 장충식 박사 기증 고구려 연화문 와당은 다른 기증품들과 함께 석주선기념박물관 제1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1998, 『기와·전』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2003, 『명선 상』
백종오, 2005, 『고구려 기와 연구』, 단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백종오, 2006, 『고구려 기와의 성립과 왕권』, 주류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