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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물관 소장 열하일기 친필본 소개(2017년 03월 08일 수요일)
작성자 학예연구실 이해림
날짜 2017.03.09
조회수 3,304

[단독] “소녀는 자못 자색 지녀” 열하일기 원본은 자유분방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7.03.08 03:00   수정 2017.03.08 13:46

                           

조선 후기 실학자 겸 소설가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대표 작품으로 알려진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친필 초고본 9종과 필사본 5종 등 단국대 소장 14종을 정밀 분석한 결과가 나왔다. 국내에는 단국대 소장본을 포함해 모두 38종의 『열하일기』가 남아 있다.

단국대 소장 친필 초고본을 보면 천주교 탄압을 피하기 위해 연암이 자기 검열 차원에서 내용을 수정했거나, 자유로운 연암의 문체가 비판받는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후손들이 수정하거나 지운 흔적도 드러났다.
 

『열하일기』 친필 초고본으로 분류되는 『행계잡록』(왼쪽)을 보면 기생충이 닭에게 옮는 것을 막기 위해 양 날개 사이의 털을 뽑아내는 풍습을 닭 역병 증상과 함께 말로 설명하듯 묘사했다. 수정본으로 추정되는 『행계잡록』(가운데)에서는 먹으로 까맣게 지웠는데 당시 구어체 문장을 배척한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후 후대 열하일기 이본(오른쪽)에서는 지운 부분이 삭제돼 있다. [사진 단국대 석주선기념중앙박물관] 
『열하일기』 친필 초고본으로 분류되는 『행계잡록』(왼쪽)을 보면 기생충이 닭에게 옮는 것을 막기 위해 양 날개 사이의 털을 뽑아내는 풍습을 닭 역병 증상과 함께 말로 설명하듯 묘사했다. 수정본으로 추정되는 『행계잡록』(가운데)에서는 먹으로 까맣게 지웠는데 당시 구어체 문장을 배척한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후 후대 열하일기 이본(오른쪽)에서는 지운 부분이 삭제돼 있다. [사진 단국대 석주선기념중앙박물관]


7일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에 따르면 이 대학은 한학자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1917~2000) 선생이 기증한 『열하일기』 초고본·필사본 14종을 대상으로 한학자·국문학자 등 3명의 연구자가 참여해 내용을 정밀 분석해왔다. 『열하일기』는 연암이 1780년 조선 정조 때 청나라 건륭제의 고희를 축하하는 사절단에 포함돼 한양을 떠나 열하(熱河·현재의 중국 허베이성 청더(承德))를 다녀온 156일간의 여행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연암의 저작물은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생전에 간행되지 못한 채 필사본의 형태로만 유통됐고 1932년에야 박영철에 의해 『연암집』(17권 6책)이 처음 활자로 간행됐다.
 
친필 초고본을 내용면에서 보면 양반의 체면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던 실학자 연암의 소탈한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수록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김명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에 따르면 『열하일기』 친필 초고본 중 하나인 『행계잡록(杏溪雜錄)』 속 ‘도강록’ 편을 보면 결혼 행차 중 수레에 탄 젊은 청나라 여인을 묘사하면서 “그중 한 소녀는 자못 자색(姿色)을 지녔다(其中一少女 頗有姿色)”고 표현했다. 그런데 이후에 나온 이본(전남대본)에서는 “옷차림이 우리나라의 당의(唐衣)와 비슷하나 조금 길다(制類我東所有唐衣而稍長)”고 바꿨다. 여인에 대한 관심 부분을 삭제해 버린 것이다.
 
이번에 연구 대상이 된 친필본을 보면 연암은 당시 청나라 여행 중 숙소를 몰래 빠져나와 현지 상인들과 필담을 나누며 밤을 새우고 돌아왔다고 서술돼 있다. 하지만 이본들을 보면 연암이 이튿날 문안 시간에 맞춰 바삐 움직였음을 알 수 있는 한자 ‘망(忙)’자를 포함해 아무도 간밤의 일을 눈치 못 채 마음속으로 기쁘다는 의미의 문장인 ‘심리암희(心裏暗喜)’ 등의 표현이 먹으로 지워져 있다. 연암 친필본에는 청나라 농민들이 닭에게 기생충이 옮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양 날개 사이의 털을 모두 뽑아내는 풍습을 닭 역병 증상과 함께 말로 설명하듯 묘사했지만 이 역시 후대 본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서술들이 이본들에서 빠진 데 대해 이번 연구를 이끈 정재철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는 “당시 연암은 생생하고 자유분방한 구어체 문체를 즐겨 썼는데 ‘문체반정(文體反正)’을 강조한 정조가 (연암을 비롯해 실학파들이 쓰던) 이런 문장을 ‘잡문체’로 규정하자 연암이 자기검열 차원에서 이후 이본에서는 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연암의 차남 박종채가 아버지의 글이 순정(純正)하지 못하다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뺐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친필 초고본에는 특정 부분이 지워져 내용을 알 수 없었으나 후대 이본에는 온전하게 복원된 사례도 있었다. 예컨대 『열하일기』의 초고본에 해당하는 『행계집』 속에는 후대에 필사된 이본에 담겨 있는 열 단락가량의 내용이 삭제돼 있음이 이번에 확인됐다. 당초 지워졌던 내용은 ‘달에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생명체가 있고, 지구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허공에 뜬 작은 별에 불과하다’는 연암의 주장이었다. 지구가 태양 중심을 돈다는 지동설 주장, 천주교의 교리와 중국에 전래된 경위에 관한 내용도 역시 초고본에는 있었으나 지워진 뒤 다시 복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명호 교수는 “1801년 천주교에 대한 대규모 탄압이 일어난 신유사옥(辛酉邪獄)의 영향을 받아 민감한 내용을 지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단국대는 국내 외에 흩어져 있는 『열하일기』 이본의 비교 연구를 통해 원본을 구현하는 정본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박경식 단국대 석주선기념중앙박물관장은 “앞으로 친필 초고본 자료를 학계에 개방해 연암의 문예성·사상성에 대한 연구의 폭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