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명활산성 작성비(전) 慶州 明活山城 作成碑(前)

  • 소 장 구 분
    탁본
  • 시 대
    신라 진흥왕 12년(551)
  • 크 기(cm)
    가로: 31 세로: 67
  • 기 증 자
    단국

1988년 8월 명활산성 내성 북벽의 성벽터 일부가 무너지면서 발견되었다. 비의 크기는 높이 66.8cm, 상폭 29.6cm, 하폭 31cm, 최대두께 16.5cm로서 형태는 긴 사각형이며 중간부분이 약간 둥글게 들어갔다. 비는 파손된 부분 없이 거의 우너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글자의 획도 뚜렷하다. 비문은 전면에만 새겼으며 상부에는 2.5cm 하부에는 20cm의 여백을 두었다. 서체는 해서체이며 글자의 크기는 1.5~2.5cm로 불균등하다. 글씨는 9행으로 쓰여졌으며 1행 17자, 2행 19자, 3행 21자, 4행 21자, 5행 18자 등 총 148자이다. 비문 자체가 깨끗하고 글씨가 새겨진 전면이 잘 다듬어져 있어서 판독이 가능하다. 비의 내용은 작성시기(신미년 11월), 공사담당자의 인명과 인적사항, 공사의 내용과 규모, 공사지역의 위치, 공사기간, 서사자의 인적사항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비는 6세기 신라의 지방에서 노동력 동원 상황을 알려주며 우리나라 축성관계 금석문 중 가장 오래된 축성비의 효시라는 점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