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신라적성비 丹陽 新羅赤城碑

  • 소 장 구 분
    탁본
  • 시 대
    신라 진흥왕 6년~12년(545~551)
  • 크 기(cm)
    가로: 102 세로: 118
  • 기 증 자
    단국

단양신라적성비는 단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단장 정영호)에 의하여 1978년 1월 6일 발견 조사되었다. 박물관에서는 괴산지구를 시작으로 신라 불교의 초기 전래지로 알려진 경상북도 선산지구 등 매년 한 지역을 선정하여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1978년도에는 신라시대의 북진로를 조사하기 위하여 충청북도 단양 일대를 조사하던 중 단양읍 하방리 산3의 적성산성 내에서 '신라적성비'를 발견하였다. 중원고구려비와 함께 광복이후 역사학계의 최대 발견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비의 발견은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한국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발견 후 단국대학교 박물관에서는 관련 학자들을 모시고 2차례의 좌담회를 개최하였으며 1978년 3월 23일~4월 5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17편의 비편과 기와편, 토기편 등을 수습하였다. 글자는 화강암 자연석의 곱고 단단한 면을 이용하여 새겼는데 얕게 음각했으나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어 비면이 깨끗하고 자획(字劃)이 생생하다. 비의 높이는 93cm, 폭은 107~53cm이며 비의 상단부가 일부 파손되었으나 좌·우 측면은 완형이어서 22행의 비문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288글자가 판독된다. 글자는 자경 1.5~2.3cm 크기로 가로 세로의 줄을 잘 맞추고 있는데 예서풍이 있는 해서로서 진귀하여 서예연구에도 귀중한 자료이다. 비문의 내용은 신라의 영토 확장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에 살던 야이차(也爾次)의 공훈을 표창하고 장차 신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당시 신라의 관직명, 토지제도, 율령제도를 밝혀주어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김유신의 조부인 무력(武力)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진흥왕대에 세워진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