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우화교 기사비(전)(2) 丹陽 羽化橋 記事碑(前)(2)

  • 소 장 구 분
    탁본
  • 시 대
    조선 영조 30년(1754)
  • 크 기(cm)
    가로: 72 세로: 172
  • 기 증 자
    단국

우화교를 건설하게 된 연유를 기록한 비이다. 단양군 치소의 남쪽에 예천으로부터 흘러오는 개천이 있고 다리 위에서 보는 풍경이 맑고 깨끗하여 우화교(羽化橋)라고 불리는 다리가 있다.그 후 다리가 끊어져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고생을 하다가 그 지역에 태수로 부임해온 이자유(李子由)가 군민들과 힘을 합쳐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 다리는 세 개의 문을 달고 무지개가 개천 위에 걸린 형상이었으며 다리 위에는 새로 등선루(登僊樓)라는 누각을 짓고 다리 이름을 그 전에 사용하던 대로 우화교(羽化橋)라고 하였다. 이에 사방의 유객들이 다리 위를 거닐면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1753년(영조 29) 12월 3일에 다리가 세워졌고 그 이듬해인 1754년 6월 15일에 비를 세웠다. 비문은 이자유의 부탁으로 남유용(南有容)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