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용문사 중수비명(후) 醴泉 龍門寺 重修碑銘(後)

  • 소 장 구 분
    탁본
  • 시 대
    고려 명종 18년(1188)
  • 크 기(cm)
    가로: 99 세로: 184
  • 기 증 자
    단국

예천에 있는 용문사의 연혁과 중수사실을 기록한 글이다. 제액은 '중수용문사기(重修龍門寺記)'라고 굵은 글씨를 세로로 썼으며 비문의 주연부에는 당초문을 둘렀다. 용문사는 신라 때에 두운(杜雲)선사가 범일국사(梵日國師)와 함께 입당구법(入唐求法)한 후 돌아와 창건한 절로서 고려시대까지 그 문도들이 계속하여 주석하였다. 1165년(의종 19) 당시 주지이던 조응(祖膺)선사가 사찰을 중수하고자 하여 제자인 자엄(資嚴)에게 일을 담당시켜 1179년(명종 9) 공사를 완료하였다. 1185년(명종 15)에는 불사의 완공을 기념하는 뜻에서 중수비를 세웠다. 비문은 고려 때 문신이자 재상이었던 이지명(李知命)이 짓고 승려인 연의(淵懿)가 글씨를 썼다. 비문은 중간 부분이 잘리어 완전한 해독이 어렵지만 용문사의 창건과 중수과정을 기록하였다. 태조가 두운대사를 찾을 때 용(龍)이 맞이하여 산의 이름을 용문(龍門)이라 하였고 처음 절을 지을 때 홀연히 무게 16냥이나 되는 은병(銀甁)이 출현하여 그것으로 일꾼들의 삯을 충당하여 건립하였으며 도량 남쪽에 청석탑을 세우고 사리를 안장할 때 오색구름이 에워쌌다는 등 절의 창건과 관련된 신이한 일 세 가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