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서기석 壬申誓記石

  • 소 장 구 분
    탁본
  • 시 대
    신라 진흥왕13년(552), 진평왕34년(612) 추정
  • 크 기(cm)
    가로: 30 세로: 88
  • 기 증 자
    단국

임신년에 서로 서약하는 내용으로 기록한 돌이라는 의미에서 '임신서기석' 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1934년 5월 경주 북쪽의 현곡면(見谷面) 금장리 석장사(石丈寺)터 부근에서 당시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오사카 긴타로(大阪金次郞)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돌의 길이는 약 34cm, 너비는 윗부분이 12.5cm이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이다. 글자는 1행 18자, 2행 16자, 3행 14자, 4행 16자, 5행 10자로 모두 5행 74자이다. 글의 내용은 유교의 경전을 함께 공부하고 그것을 행할 것을 맹세한 것으로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초기에는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의 견해를 받아들여서 732년 설이 우세했으나 근래에는 552년(진흥왕 13), 612년(진평왕 34), 672년(문무왕 12)이라는 설이 제기되었으며 문장이 우리말식의 한문체여서 통일기 이전에 비문을 지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 비문은 신라사회의 유교 수용, 천(天)의 성격과 의미 등을 시사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